#A씨(33·여)가 변호사를 찾았다.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이 교통사고로 사망했는데 남편의 사망보험금 10억원이 전부 시댁으로 갔다는 이유에서였다. 변호사는 "남편과 혼인신고는 했나"라고 물었다. 박씨는 '하지 않았다'고 답했고 변호사는 "그럼 안타깝지만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최근 신혼부부들 사이에 혼인신고를 하지 않는 사례가 늘고 있다. 한 결혼정보회사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여성 중 이혼에 대한 대비로 혼인신고를 보류한다고 답한 비율이 18%에 달했다. 그러나 이 같은 혼인신고 보류는 혹시 모를 사고가 발생할 경우 배우자로서의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게 할 수 있다.
◇혼인신고 안하면 상속인 자격 없어=11일 법원에 따르면 현행 민법은 상속을 받을 수 있는 배우자는 법률혼 관계에 있는 배우자로 한정하고 있다. 법률혼 관계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혼인신고를 해야 한다.
A씨의 경우 혼인신고는 하지 않았지만 결혼한 지 8개월이 지났고 주변 사람들은 A씨가 결혼했다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다. 흔히 말하는 사실혼 관계다. 그러나 사실혼 관계에 있는 배우자는 민법상 상속인이 아니다. A씨는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남편의 보험금을 받을 수 없는 것이다.
재혼한 부부의 경우에도 두 사람이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다면 같은 결과가 나온다. 변호사 업계에 따르면 재혼부부는 신혼부부보다 혼인신고를 꺼리는 경우가 많아 문제가 더 자주 발생한다고 한다.
또 부부가 세금 문제 등으로 위장 이혼을 한 뒤 계속 결혼생활을 유지했더라도 배우자는 상속인이 될 수 없다.
배모씨(78·여)의 자녀들은 부친이 사망한 후 상속 분쟁이 생기자 "배씨가 세금 부담을 줄이기 위해 위장이혼을 한 만큼 배씨도 상속대상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2011년 소송을 냈다.
그러나 서울가정법원은 "배씨 부부가 사실혼 관계를 유지했는지와는 무관하게 이미 법률상 혼인관계가 해소된 만큼 배씨는 상속인이 아니다"라고 소송을 각하했다.
◇"사실혼 관계도 상속대상 인정해야" 목소리=법률혼 배우자만을 보호하는 현행 민법에 대해 변호사들은 '수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임성환 가사 전문 변호사(45·연수원 29기)는 "상속과 관련된 문제를 제외하면 사실혼 배우자를 법률혼 배우자와 동일하게 취급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법조계에 따르면 근로기준법 시행령은 배우자에 사실혼 배우자를 포함시키고 있고 군인연금법 등도 사실혼 배우자를 인정하고 있다.
최근 서울행정법원은 사실혼 관계를 유지한 배우자를 연금지급 대상으로 인정하는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이모씨(67)는 군인인 남편과 1968년 혼인신고를 했다가 1997년 이혼하고 2002년 다시 혼인신고를 했다. 남편이 지난해 사망하자 이씨는 연금지급을 청구했고 국방부는 "남편이 61세가 된 이후(1999년) 혼인한 배우자로 유족연금을 받을 수 없다"는 결정을 내렸다.
군인연금법은 61세가 넘어 결혼한 배우자에 대해 유족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이씨는 "경제적인 이유로 가장이혼하고 사실혼 관계를 유지했으므로 유족연금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며 소송을 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1부(부장판사 문준필)는 이씨가 국방부장관을 상대로 낸 유족연금지급불가결정취소 청구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법률상 이혼기간동안 사실혼을 유지했고 국민연금법은 사실혼 배우자도 배우자로 포함하고 있으므로 이씨는 '61세 이후에 혼인한 배우자'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한 변호사는 "프랑스의 경우 동거하는 커플의 경우에도 우리나라 법률혼과 같은 보호를 받을 수 있다"며 "사실혼 부부에 대해서는 법률혼 배우자에 준하는 보호를 해 주는 방향으로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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