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되간다. 문제 없다'. 조합원들의 질문에 조합장과 임원들은 이렇게 일관했어요. 그런데 이제 와서 1000억원 이상을 조합원 1000명이 나눠내랍니다. 정말 잠이 안 옵니다.
일 년에 1000만원 모으기도 힘든 서민들입니다. 그런데 (평균) 2억원을 더 내라니요. 은행에서 빌리면 된다지만 월 100만원이 넘는 이자, 감당 안 됩니다. 우린 거리로 나 앉아야 하는건가요?". (부천 약대 주공2단지 조합원 박모씨)
재건축 조합 해산과 관련된 이야기가 아니다. 내년 3월이면 완공될 재건축 단지가 실제로 처한 상황이다.
'확정지분제'. 경기 상황이 좋을 때 재건축 단지들이 너도 나도 선호하던 재건축 방식이다. 집을 지어줄 건설사가 조합원이 가진 대지지분을 기준으로 공짜로 지어줄 수 있는 면적을 정해놓는 방식이다.
공사 과정에서의 이익과 손실은 모두 건설사가 책임진다. 주택 경기가 좋을 때는 이 방식으로 조합과 건설사 모두 많은 이익을 남겼다. 일반분양가를 높여도 집이 잘 팔렸기 때문에 조합원 집을 공짜로 지어주고도 건설사는 이익을 챙길 수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상황이 달라졌다. 대중교통이나 기반시설이 잘 갖춰진 서울의 재개발·재건축 단지에서도 미분양이 남아있을 정도로 미분양 적체가 심하다.
최고 23% 깎았지만…분양률 10%대
그래서 요즘 건설사들은 '도급제'를 선호한다. 단순히 공사비만을 받고 집을 지어주는 것이다. 분양이 잘 되든 안 되든, 책임은 조합이 진다. 요즘 같은 불경기엔 남기는 것 보다 안전하게 사업을 진행해야 한다는 전략이다.
부천 약대주공 2단지(약대 아이파크/총 1613가구·일반분양 416가구 포함)의 재건축은 이 두가지 방식을 모두 사용하게 되면서 일이 꼬였다.
"'사업을 하루라도 빨리 마무리 지어야 비용을 줄일 수 있다고 해서 그런 줄 알았지… 누가 이런 일이 생길거라고 짐작이나 했겠어요?" (조합원 김모씨)
조합원 김씨는 2003년께 이 아파트 공급면적 53㎡형을 2억원 가량에 매입했다. 그는 당시 너무 행복했다. 53㎡형의 대지지분이 79㎡나 됐기 때문에 새 집을 받기 위해 돈을 들일 필요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2003년부터 재건축이 본격화하면서 시공사인 현대산업개발은 160%의 무상지분율을 주기로 하고 조합측과 가계약을 했다. 이 계약조건 대로라면 53㎡형을 가진 김씨는 125㎡형까지 무상으로 들어갈 수 있는 셈이었다.
그런데 2007년께 재건축 관련 법인 도정법(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이 바뀌면서 시공사를 다시 뽑아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본계약이 아닌 가계약 상태의 시공사의 시공권을 인정받을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당시 L건설, H건설 등 대형사들이 수주전에 뛰어들었어요. 그런데 현대산업개발이 제시한 지분율 120%가 가장 좋은 조건이었습니다. 금융시장 불안 등으로 당초 가계약(160%의 무상지분율)대로 무리하게 사업을 추진할 수 없다는 설명이었다. 하지만 지분율 40%가 날아갔지만 주민들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조합원들은 당시 상황을 회상했다. 그런데 시련은 끝이 아니었다. 지분율이 낮아지면서 조합원들의 추가 부담금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53㎡형 보유자가 112㎡형짜리 새 집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7500만원을 내야 됐다.
그런데 이번엔 아예 사업방식이 바뀌었다. 시공사가 지분제가 아닌 도급제로의 사업방식 변경을 요청한 것이다. 주택경기가 가라앉으면서 아파트 분양이 잘 안 됐다. 일반분양의 실패로 900억원 가량의 손실을 떠안아야 시공사로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현대산업개발 측은 "지난해 10월 첫 분양 이후 일반분양 성적이 너무 저조해 분양가를 크게(9.8~23%) 낮췄지만 미분양 소진이 어려운 상황이어서 도급제 변경은 불가피했다"며 "지난해 4월 열린 총회에서 조합원의 71%가 도급제 변경을 찬성했고 부천시의 인가를 받아 사업방식이 변경됐다"고 설명했다.
도급제로 바뀐 이후 조합원들이 떠안아야 하는 돈은 자그마치 1368억원이다. 여기에는 미분양 손실, 조합 대여비 등이 포함돼 있다. 현대산업개발은 당초 2228억원을 요구했지만 조합과의 수차례 협상을 거치면서 1000억원 가량이 줄었다.
조합원 "시공사만 배불려" vs 시공사 "억울하다"
이에 따라 조합원 1명이 물어야하는 추가부담금은 평균 1억원 내외에서 2억원 이상으로 배 가량 늘었다. 당초에는 새 아파트를 받기 위해 드는 추가 부담금에다 가구당 1억3000만원 가량을 더 내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조합원 300여명은 부천시청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도급제로 변경하는 과정에서 절차상의 문제가 있었던 만큼 부천시가 승인한 사업계획 변경 인가 자체가 무효라는 주장이다.
약대주공 비상대책위원회 관계자는 "사업계획변경을 위해서는 전체 조합원의 3분의 2 이상의 동의가 필요하지만 동의서를 낸 조합원은 678명으로 당시 조합원 수(현재 현금청산 등으로 감소) 대비 65.6%밖에 되지 않는다. 현대산업개발의 71% 동의는 말이 안 된다. 절차상의 문제가 있기 때문에 인허가 자체는 무효"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시공사인 현대산업개발측은 "총회를 거쳐 조합원들의 동의를 얻어 절차를 밟은 만큼 절차상의 문제는 없다"며 "다만 고통분담 차원에서 미분양 물량 매입과 분양가 추가 할인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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