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마비·미분양에 돈 안 돌아 일자리 최소 6만 개 증발
김성수(45·서울 사당동)씨는 부인과 고민 끝에 구입한 지 6개월밖에 되지 않은 중형 승용차를 1900만원에 최근 팔았다. 대기업 차장인 그의 월급으로 차를 굴릴 여유가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내놓은 집이 1년 넘게 안 팔리고 자녀 교육비는 늘어나자 한 달 40만~50만원인 승용차 유지비를 줄이기로 한 것이다. 그는 살고 있는 99㎡대 아파트 크기를 줄여 차액으로 대출을 갚아 이자(월 70만원)를 아낄 계획이었다. 그러면 중·고생인 두 자녀의 늘어나는 교육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서였다. 그는 “식비를 줄여도 한계가 있어 마지막 방법으로 차를 처분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주택건설현장에서 주로 외벽작업을 하는 일용직 노동자 이병랑(57·서울 구로4동)씨는 지난달 중순부터 한 달 가까이 일감을 구하지 못하고 있다. 영하 14도였던 지난 2일에도 오전 4시에 지하철 7호선 남구로역 옆 인력시장을 찾았지만 헛걸음을 했다. 이날 이곳을 찾은 100여 명 가운데 절반만 건설현장으로 가는 봉고차를 탔다. 그는 “하루 일당이 15만원인데 한 달가량 '공'치는 바람에 조만간 생활비가 바닥날 것 같다”며 한숨 쉬었다.
서울 천호동·신사동 인력시장은 2~4년 새 없어지고 지금은 서울 가리봉동·구로동·신월동 정도에서만 운영된다. 구로동 인력시장도 3~4년 전엔 하루 500여 명이 찾았다. 한 인력회사 관계자는 “주택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인력시장이 잇따라 문을 닫고 일을 찾아 나오는 사람도 확 줄었다”고 말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장기화하고 있는 주택거래 침체의 파장이 서민 가정을 뒤흔들고 있다. 7일 본지가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 의뢰해 추산한 결과 주택거래 감소와 미분양에 묶인 돈은 약 74조원으로 파악됐다. 거래가 줄어든 20만 가구의 거래금액이 52조원, 미분양물량 7만6319가구의 분양가가 22조원이다. 이는 한 해 신규 분양물량을 포함한 국내 주택시장 전체 규모(약 250조원)의 30%가량 되는 금액이다. 이 돈이 돌지 않는 '돈맥경화'로 중산층의 자금 흐름이 막혀 있고 고용에도 심각한 타격을 주고 있다.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지난해(11월까지 기준) 월평균 전국 주택거래량은 5만6994가구로 2008년(7만4483가구)의 76% 수준이다. 주택시장을 주도하는 서울·수도권의 거래량 감소는 더욱 심각하다. 2008년 월평균 4만211가구에서 지난해 2만1189가구로 반 토막 났다. 지난해 전체 거래량은 국토부의 공식적인 집계가 시작된 2006년 이후 처음으로 70만 가구를 밑돌 것으로 전망된다. 금융위기 이전에 비하면 20만 가구가량 적다.
신규 분양 아파트 거래도 위축됐다. 지난해 4월 6만1000여 가구까지 줄었던 전국 미분양물량은 지난해 11월 말 기준 7만6319가구로 5개월 연속 증가했다. 김신조 내외주건 사장은 “주택수요자들이 기존 집을 팔아 자금을 마련할 길이 어려워지니 새 아파트를 분양받을 엄두를 내지 못한다”고 전했다.
부동산은 우리나라 가계 전체 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70%로 절대적이다. 주택산업이 휘청거리면 일자리도 줄어든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주택거래 감소로 2011년 6만5000명이 고용기회를 잃은 것으로 분석했다.
김현아 한국건설산업연구원 건설경제연구실장은 “주택거래 침체는 심각한 사회문제다. 집값 상승 기대감이 꺾인 지금이 적극적인 거래 활성화 대책이 나와야 할 적기”라고 말했다. 주택거래가 늘면 집값이 다시 불안해질 우려도 있으나 2011년 취득세 감면효과로 서울·수도권 주택거래량이 전년에 비해 32% 늘었지만 집값은 0.6% 오르는 데 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