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9월 MB정부가 보금자리주택 개념을 내놓자마자 부동산 시장은 들썩였다. 강남 그린벨트 해제지에 주변 시세의 반값 주택을 공급하겠다니 너도나도 강남 입성을 꿈꿨다. 다음 해 강남, 서초지구 아파트는 분양가가 3.3㎡당 1000만원대로 정말 ‘반값’이었다. 하지만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었다. 보금자리주택에 당첨된 일부만 ‘로또’의 단맛을 봤을 뿐 온갖 부작용이 속출했다. 실수요자들이 보금자리주택을 기다리며 집을 사지 않아 집값은 떨어지고 전셋값은 폭등했다. 민간 분양시장에 찬바람이 불면서 잘나가던 건설사마저 휘청댔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MB정부 실패를 교훈 삼아 보금자리주택 공급 계획을 대폭 수정하기로 했다. 부동산 전문가 30인에게 보금자리주택 개발 해법에 대한 조언을 구했다. 새 정부가 부동산 시장을 살리기 위해 하루 빨리 내놓아야 할 방안은 무엇인지 살펴봤다.
너도나도 로또 꿈, 전세난민 급증
경기도 파주에서 아파트 개발 사업을 진행 중인 A시행사 K대표는 요즘 죽을 맛이다. 2년여간 시청 공무원을 줄기차게 설득한 끝에 지난해 초 1000여가구 아파트 건설 사업을 승인받았다. 이때만 해도 아파트 개발 대박 꿈에 부풀었다.
하지만 복병이 생겼다. 아파트를 지을 건설사 찾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 1년여가 지난 지금까지도 시공사를 구하지 못해 금융비용만 늘고 있다. 어렵게 한 건설사를 물색해 좋은 조건을 제시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허탈했다. 건설사 관계자는 “서울에서 15㎞ 떨어진 곳에 반값 보금자리주택이 들어서는데, 30㎞도 더 떨어진 외곽 아파트가 분양이 되겠느냐”며 끝내 시공을 거부했다. K대표는 10년간 해온 부동산 개발 사업을 아예 접을까 고민 중이다.
“건설사 출신 CEO가 대통령이 돼서 건설 경기를 살려줄 것으로 기대했지만 실상은 반대다. 정부가 손쉽게 그린벨트를 풀어서 싼값에 아파트를 내놓으니 건설사들은 당해낼 재간이 없다. 이러다 아파트 짓는 건설사가 아예 사라질까 걱정이다.”
보금자리주택은 MB정부의 최대 국책사업으로 꼽힌다. 수도권 그린벨트를 해제해 주변 시세의 절반인 ‘반값아파트’를 공급하겠다는 정책으로 출발했다. 치솟는 분양가에 전셋집을 전전하던 실수요자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희소식이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놓고 보니 빈 깡통이었다. 일단 공급 목표만 거창했다. MB정부는 2009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4년간 수도권에만 보금자리주택 32만가구를 공급하기로 했다. 당초 공급 목표는 2018년까지였지만 집값 안정을 이유로 지난해까지 6년이나 공급 일정을 앞당기는 무리수를 뒀다. 단순 계산으로만 1년에 8만가구를 공급해야 한다.
국토해양부가 집계해 보니 지난해까지 보금자리주택 공급 실적은 총 13만여가구에 불과했다. 사업 승인 기준이라지만 당초 목표의 40% 수준에 그친 셈이다. 원인은 공급 주체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 자금난 때문이다. 하루 이자만 100억원 이상을 지불하는 ‘적자 공기업’ 입장에서 수도권에 대규모 보금자리주택을 짓는 건 애초부터 무리였다는 지적이 많다. 이미 분양에 들어간 강남 세곡, 서초 우면, 하남 미사 등 시범지구를 제외하면 대부분 사업 일정이 지연되고 있다. 게다가 강남권 보금자리주택에만 수요가 몰렸을 뿐 수도권 외곽 보금자리주택은 미분양이 넘쳐났다.
주민 반발도 끊이질 않는다. 보통 거주지 주변에 대규모 개발 계획이 발표되면 주민은 이를 반기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보금자리주택은 워낙 저렴하게 공급되는 탓에 인근 집값을 떨어뜨릴 우려가 크다. 한 예로 성남시 고등 보금자리지구 주민들은 아예 보금자리주택 건설 사업을 취소하라며 정부 상대로 소송까지 제기했다. 이런 속도라면 2018년까지 전국에 150만가구(수도권 100만가구, 지방 50만가구) 보금자리주택을 공급하겠다는 목표는 허언에 그칠 전망이다. 김호철 단국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는 “MB정부 임기 내 성과를 내려는 속전속결 정책이 문제다. 소규모 자투리땅이나 매입 임대를 활용해 보금자리주택을 차근차근 개발했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보금자리주택이 들어서면서 온갖 부작용만 양산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주변 시세보다 저렴한 주택을 공급한다는 취지는 좋았지만 실수요자들이 보금자리주택을 기다리는 탓에 전셋값은 치솟고 거래는 뚝 끊겼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 아파트값은 5.2% 하락했고 수도권 아파트 거래량(1~10월)은 2205건으로 2009년의 3분의 1에도 못 미쳤다. 동시에 전세난은 수그러들지 않으면서 전셋값은 전국 평균 2% 넘게 올랐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분양가를 대폭 낮춰 시장 구조를 왜곡하고 전셋값 폭등을 불러왔다. 누구나 입성하고 싶은 서울 강남 그린벨트를 풀면서 한창 개발 중인 수도권 2기신도시가 직격탄을 맞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부작용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민간 아파트 공급이 위축되고 주택사업에 주력했던 중견건설사들은 줄줄이 부도를 맞았다. 지금도 위기는 끝나지 않았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국내 건설사 중 부도 위험이 높은 부실기업 비중이 10곳 중 1곳을 넘고 이들 부채 규모만 13조원에 달한다.
앞으로 보금자리주택 운명은 어떻게 될까.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보금자리주택을 임대 위주로 공급하겠다”고 밝힌 만큼 분양이 줄고 임대주택 위주로 바뀔 가능성이 높다. 인수위 차원에서도 보금자리지구별로 취소, 축소 여부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아직 보상을 시작하지 않은 곳을 중심으로 지구계획을 변경해 분양 물량을 대폭 줄일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매경이코노미가 부동산 전문가 30인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27명이 ‘보금자리주택 계획을 수정하거나 취소해야 한다’고 답했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보금자리주택 수요가 부족한 수도권 외곽은 지금이라도 공급을 중단해야 한다”고 얘기한다.
임대주택으로 바꿀 때도 복병이 있다. LH가 국민임대주택을 짓는 데 드는 비용은 가구당 평균 1억원에 육박한다. 그만큼 많은 재정이 투입된다는 얘기다. 분양물량을 줄일 경우 그동안 보금자리주택 분양을 기다려온 수요자 반발도 예상된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보금자리주택 공급을 공공이 전담하지 말고 민간 참여를 늘려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준환 서울디지털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보금자리주택을 민간 건설사에 대거 이양해 LH 자금 부담을 줄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보금자리주택 민간 참여 늘려야”
만약 보금자리주택 공급 계획이 바뀌면 부동산 시장은 살아날 수 있을까.
박근혜 당선인이 내놓은 부동산 정책 공약 중 부동산 세제 개편이 중요한 변수가 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취득세 감면 연장,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완화 등 세제 개편이 절실하다고 주장한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한시적 세제 감면에 그치지 말고 근본적으로 세제를 개편해야 한다.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를 완전 폐지해 자금 여력이 있는 가구가 주택을 구매하도록 유도하면서 거래를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부동산 정책의 큰 틀도 다시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세다. 박 당선인 부동산 공약을 보면 보유주택지분매각제, 목돈 안 드는 전세제도 등 하우스푸어 지원책에는 구체적인 자금 계획까지 담겨 있지만 정작 부동산 시장을 회복시킬 만한 정책은 찾아보기 어렵다. 유휴철도 부지 20만호 건설 공약 역시 소음, 진동이 없는 철도 부지를 찾기 어렵다는 점에서 현실성이 낮다. 심교언 교수는 “박 당선인 공약은 국토, 도시의 큰 그림 없이 당장 시급한 이슈로만 구성돼 있다”며 “도시 개발 비전부터 마련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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