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값을 송금한 사람이 계좌번호를 착각해 돈을 다른 회사로 보낸 경우 은행이 그 돈을 잘못 송금받은 회사에 갖고 있던 대출금 채권과 상계할 수 있을까.
김모씨는 2013년 11월 중소기업은행에 내용증명우편을 보냈다. 이틀전 물품대금으로 1억2000만원을 이 은행 계좌로 송금했는데 회사를 착각해 B사 계좌로 보내야 할 것을 A사 계좌로 잘못 보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은행은 한달 뒤 김씨가 A사로 잘못 송금한 돈을 A사의 이 은행 대출금 14억여원중 1억2000만원과 상계한다는 내용의 통지서를 A사에 보냈다. 김씨는 이에 반발해 예금채권을 가압류했고, 법원에서 추심명령을 받은 뒤 "1억2000만원을 돌려달라"며 은행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서울고법 민사11부(재판장 김정만 부장판사)는 중소기업은행의 A사 계좌에 1억2000만원을 송금한 김씨가 이 은행을 상대로 낸 추심금 청구소송(2014나2045803)에서 최근 원고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수취은행은 원칙적으로 수취인 계좌에 입금된 돈이 송금의뢰인의 착오로 이체된 것인지 조사할 의무가 없고, 상계행위가 신의칙 위반이나 권리남용 해당한다는 등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은행의 대출금채권과 수취인의 예금채권을 상계하는 것이 가능하다"며 "송금의뢰인인 김씨와 수취인인 A사가 중소기업은행에 착오송금임을 알리고 반환을 요청했다는 사실만으로 은행의 상계가 신의칙에 반하거나 상계권을 남용하는 것이라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A사와 B사, 두 회사의 대표이사는 부자지간으로 두 회사의 인적구성 뿐만 아니라 영업목적도 동일하고, A사 직원이자 B사 사내이사인 사람이 A사 통장과 도장을 소지하고 예금을 인출하려고 시도하기도 했다"면서 "A사와 B사는 서로 상호가 다를 뿐만 아니라 계좌번호 역시 상이해 착오 송달 가능성이 높지 않고, 김씨가 B사에 대해 물품대금 채무를 부담한다고 볼 수도 없어 1억2000만원이 B사에 송금할 돈이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설명했다.
앞서 1심은 "중소기업은행이 상계 통지서를 배달증명부 내용증명우편으로 보내지 않았다"며 원고승소 판결했다. 은행은 항소한 뒤 통지서를 배달증명부 내용증명 우편으로 보냈다. 더이상 절차 위반을 주장할 수 없었던 김씨는 항소심 과정에서 "착오송금한 돈에 대해 상계권을 행사하는 것은 신의칙에 위반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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