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씽씽 달리는 고속도로 1차로에서 갑자기 앞차가 급정거한다면?' 상상만 해도 오싹한 장면이다. 가까스로 내 차는 세울 수 있다 하더라도 뒤따라오는 차들까지 모두 멈춘다는 보장은 없다. 만약 앞차의 급정거 이유가 사고나 고장이 아니라 고의였다면, 그래서 사망 사고까지 났다면 이 운전자는 사실상 살인을 저질렀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지난 7일 중부고속도로에서 일어난 5중 추돌 사고가 바로 이런 사건이었다. 하행선을 달리던 i40 운전자 최모(35)씨가 주행 차선 변경 문제로 쏘렌토 운전자 남모(23)씨와 신경전을 벌이다 충북 오창 나들목 인근 1차로에서 쏘렌토 앞을 가로막고 급정거해버렸다. 쏘렌토와 그 뒤를 따르던 엑스트랙, 5t트럭도 급정거했지만 다섯 번째 차인 5t카고트럭은 정지하지 못하고 앞차를 들이받아 5중 추돌 사고가 났다. i40가 급정차한 후 사고가 일어나는 데까지는 6초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 사고로 카고트럭 운전자 조모(58)씨가 사망하고, 다른 운전자 4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도로교통법으로만 따지면 고속도로상 정차에 범칙금 4만원을 부과하게 돼 있다. 그러나 이번 사고는 단순한 정차로 보기 어려운 정황이 있다. 쏘렌토 운전자인 남씨가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올린 블랙박스 영상 사진과 설명에 따르면 i40 운전자 최씨는 남씨와 차선 변경 문제로 시비가 붙자 남씨에게 갓길에 정차하라고 손짓하고, 주행 중 갑자기 끼어드는 등 위협 운전을 했다. 이 영상을 접한 네티즌들은 "위협 운전을 하고 사망자 발생 원인을 제공한 i40 운전자를 엄벌에 처하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경찰과 검찰은 위협 운전을 하고 고속도로에 고의로 정차했다 하더라도 그 행동으로 사망자가 발생할 것을 알고 있었다고 보기 애매하다는 점 때문에 고심하고 있다. 경찰은 일단 최씨에게 위협 운전을 한 혐의로 1년 이상 징역형에 처할 수 있는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을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위험한 곳에 불법 정차를 해 사고를 냈기에 교통사고처리특례법도 적용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중과실치사죄나 5년 이상 징역에 처하는 교통방해치사죄를 적용하는 것은 어려울 것 같다는 게 검찰과 경찰의 설명이다. i40가 급정차한 뒤 다른 차량이 다 제동을 한 상황에서 마지막 카고트럭만 제동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i40 운전자의 급정차 행위가 카고트럭 운전사의 추돌에 직접적 원인이 됐다고 보기 힘든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마지막 트럭 운전사가 안전 거리를 미확보했을 가능성, 졸음운전을 했을 가능성도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검경(檢警)은 "교통방해치사죄는 전 차선을 가로막는 등 차량 통행을 막으려는 명백한 고의성이 있어야 적용하는데, 논란 여지가 있다"는 입장이다.
반면 엄벌이 가능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문철 변호사는 "고장이나 사고로 정차해 있는 앞차를 뒤차가 추돌했더라도 과실 비율이 앞차 40%, 뒤차 60%로 앞차도 유죄를 받는데 이번엔 i40 운전자가 위험성을 충분히 알 수 있었기 때문에 중과실치사죄를 적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광삼 변호사는 "전체 도로의 통행을 방해하려는 고의성을 갖지 않았다 해도 자신의 i40가 정차함으로써 쏘렌토와 뒤 차량들이 연속적으로 멈출 것이라는 예측은 가능했을 것이라고 본다"며 "교통방해치사죄가 성립할 수 있다"고 했다. 또 다른 변호사는 "상식에 어긋나는 행동을 함으로써 무고한 생명을 뺏는 일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라도 교통방해치사죄를 적용해야 한다"고 말했다.